글 임나경 편집장  사진 이경섭 실장

3호선 약수역 8번 출구로 나와 40~50m가량 걷다 보면 내려가는 계단이 보인다. 계단을 내려가 좌측으로 눈을 돌리면 독특한 아우라를 풍기는 3층 건물이 나타난다. 건물 외관은 공사현장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거푸집을 재활용한 느낌의 거무스름한 판자와 흙의 느낌을 살린 건물이다. 판잣집 일대였던 신당동과 당시 서민들 정서를 이곳에 녹여내려는 흔적이 역력하다. 그리고 건물 입구에 우뚝 선 원형 탑이 이방인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자세히 보면 2370개의 각시탈 이미지가 실린 막걸리 공병을 쌓아 올렸다. 이는 춘풍양조장이 세계 237개국에 우리 술을 널리 알리고자 하는 소망을 담은 것. 춘풍양조장은 한국의 정통 양조법으로 탄생한 105년 된 번암주조의 우리 술인 ‘미주(米酒)’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1층 내부는 막걸리를 생산하는 양조실과 즉석에서 술을 만들어 마실 수 있는 제품조를 두어 술을 생산하고 시음부터 구매까지 할 수 있다. 화장실 앞쪽에는 과거 전통 양조장마다 자리했다던 우물을 모티브로 한 세면대가 있어 눈길을 끈다.

2층 공간으로 오르면 총 10석 공간의 바(Bar)를 만날 수 있다. 한옥을 모티브로 해 ‘비움’과 ‘충만한’ 공간을 담아냈다. 벽면을 모두 한지로 마감했으며 바 안쪽으로는 문풍지 뒤에 간접 등을 배치해 호롱불이 은은하게 비추는 모습을 연출했다. 공간 중앙에 자리한 스피커와 미디어 타워를 통해 술이 발효되는 소리와 영상을 라이브로도 감상할 수 있다. 술이 발효되는 소리는 문밖에서 하루종일 비가 내린다거나 시냇물이 흐르는 소리를 연상케 한다. 이곳을 찾는 고객들은 ‘막걸리 발효되는 소리가 이렇게 아름다울 일인가’ 하며 감탄한다. 춘풍양조장은 고객을 위해 막걸리 투어 예약을 받고 있다. 주말과 저녁시간엔 젊은층 고객이 많고, 낮에는 외국인들의 참여가 활발하다고. 촬영차 본지가 방문한 날에도 외국인 고객이 혼자 막걸리 망중한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3층은 막걸리가 발효되는 모습을 공간으로 승화시켰다. 2층에선 발효탱크 안에서 들리는 발효소리를 구현했다면 3층은 이미지로 이를 풀어내 발효탱크 안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일게 한다. 천장과 벽면 전체를 흰색 천으로 몽글몽글한 발효모습을 형상화했고, 은은한 조명을 통해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렇듯 춘풍양조장은 좋은 술을 위해 멀리 떨어진 지방의 양조장을 찾아가야만 했던 번거로움을 도심 속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게 했다. 더구나 AI 설비를 통해 우리 술을 빚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장인이 정성껏 술을 빚어오던 노하우를 디지털 설비와 소프트웨어로 승화시켜 24시간 진행되는 효모의 발효를 최적의 환경하에 진행될 수 있게 만든 것. 그만큼 고객들은 균일한 품질의 제대로 된 우리 술을 도심 속에서 즐길 수 있게 됐다. 뿐만아니다. 해외 현지에서도 균일한 품질의 전통주를 즐길 수 있게됐다. 춘풍양조장이 해외진출에 매우 적극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1919년부터 3대째 이어져 내려오는 전라북도 번암주조의 발효 노하우를 IT기술로 인해 전 세계 곳곳에서 맛볼 날이 머지않았다.

춘풍양조장 건너편에는 최근 막걸리 바를 오픈해 문전성시다. 이곳을 지나던 사람들은 힙한 공간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막걸리를 즐기는 이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막걸리 스탠딩바에선 춘풍막걸리와 춘풍미주를 ‘잔술’로 즐길 수 있어 남녀노소 부담 없는 공간이다. 잔술의 경우, 번암막걸리 6% 한잔에 1000원, 춘풍막걸리 6% 한잔에 3000원, 춘풍미주 9% 한잔에 9000원, 춘풍미주 12% 한잔에 1만5000원에 즐길 수 있다. 춘풍양조장에서는 우리 술과 접목한 칵테일과 하이볼도 즐길 수 있다. 막걸리와 주스를 결합한 봄바람에서부터 노을, 연기, 바다, 그린비 등의 이름이 정겹다. 메뉴도 핑거푸드 외에 감자채전, 녹두빈대떡, 해물파전 등 단출하다. 겨울을 앞두고 굴전도 준비 중이다. 앞으로는 제철에 맞는 식재료를 활용한 메뉴도 늘려나갈 계획이다. 춘풍양조장이 메뉴 전을 선택한 것도 이를 굽는 소리가 막걸리의 발효소리와 흡사해서다. 공간과 소리, 비주얼, 발효, 맛에 이르기까지 어디 하나 디테일하지 않은 것이 없다. 막걸리, 아니 미주(米酒)의 내일이 밝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