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끝에서 끌어올린 꿈
기장끝집 정애영 대표, 이준석·이현승 실장
대를 잇는다는 것은 그저 가업을 물려받는 일이 아니라 함께 지켜온 가치를 더 먼 미래로 이어가는 일이다. 부산 기장의 가장 외진 끝자락에서 시작한 기장끝집은 어머니의 집념과 두 아들의 도전으로 새로운 길을 열고 있다. 정애영 대표가 지켜온 손맛에 큰아들 이준석 실장의 현장 운영과 작은아들 이현승 실장의 온라인 감각이 더해지며 기장끝집은 장사에서 기업으로 나아가고 있다. 때로는 좌충우돌 부딪히기도 하지만 가장 따뜻한 전복 한 그릇을 고객에게 제공하겠다는 세 사람의 마음은 오롯이 한 곳을 향하고 있다.
글 임나경 기자 사진 이경섭 실장
기장의 끝에서 다시 시작한 희망
부산 기장해안로를 따라가다 보면 길 끝자락에서 유독 많은 사람을 불러 모으는 ‘기장끝집’을 만날 수 있다. 전복죽 한 그릇을 먹기 위해 전국은 물론, 외국인들도 일부러 찾아오는 곳이다. 기장끝집은 현재 죽성본점과 일광점 2곳을 운영하고 있으며, 줄 서서 먹는 기장의 대표 맛집이자 월평균 수만개의 밀키트를 판매하는 브랜드로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시작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부산 시내에서 운영하던 식당을 폐업한 뒤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 있던 정애영 대표는 우연히 현재의 기장끝집 본점 앞을 지나게 됐다. 2년 동안 비어 있던 점포는 당시 자신의 모습처럼 외롭고 지쳐 보였다. 좋은 상권도, 성공을 보장할 만한 조건도 아니었지만 정 대표는 이튿날 부동산을 찾아가 바로 계약했다.
그렇게 기장의 끝자락에서 새로운 장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주변 식당과 크게 다르지 않은 메뉴를 판매했다. 고객이 먼 길을 돌아 이곳까지 와야 할 이유가 없었고 매출도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지인들은 “좋은 부산 시내 상권을 두고 왜 하필 여기서 장사를 하느냐”, “이곳은 원래 식당이 잘 안 되는 자리”라며 안타까워 했다. 폐업을 고민할 만큼 절박한 상황에 놓이자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 “이왕 망할 거라면 손님에게 원 없이 퍼주고 망하자는 마음이었다. 끝자락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뜻을 담아 상호도 기장끝집으로 바꾸고 메뉴와 상차림을 전부 뜯어 고쳤다”고 한다.
생계를 위해 시작한 외식업은 어느덧 2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분식집과 우동집을 운영했던 어머니는 이제 기장끝집의 맛을 지키는 수장이 됐고, 식당에서 밥을 먹고 숙제를 하며 자란 두 아들은 각각 매장과 밀키트 사업을 책임지는 경영 파트너가 됐다.
전복죽 한 그릇에 진한 정성을 담아내다
기장끝집이 선택한 승부수는 평범한 전복죽을 푸짐한 한 상 차림으로 재구성하는 것이었다. 기장해안로 주변에는 오래전부터 전복죽과 해산물을 판매하는 식당이 많았다. 정 대표는 전복죽에 해산물을 따로 주문하는 기존 방식을 뒤집었다. 활전복과 멍게, 소라, 미역, 꼬시래기, 물회 등 바다의 맛을 담은 음식에 수육, 파김치, 김치찜, 장조림과 각종 나물 등을 더해 대나무 소쿠리에 한꺼번에 차려냈다. 전복죽이 완성되기 전 다양한 찬을 맛보고 사진을 찍으며 기다리는 과정까지 하나의 식사 경험으로 설계했다.
정애영 대표는 “서로 단단하게 엮인 소쿠리처럼 전복죽과 반찬이 어우러지기를 바랐다. 매 순간 새로운 맛을 느끼고, 먼 길을 찾아온 시간과 행복한 추억까지 한 상에 엮고 싶었다”고 말했다. 상차림은 풍성하지만 중심은 어디까지나 전복죽이다. 쌀과 전복 내장, 육수의 균형을 세심하게 조율하고 주문이 들어오면 즉석에서 죽을 끓인다. 정 대표가 내세우는 원칙은 ‘100% 전복죽, 100℃ 전복죽’이다.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는 맛을 목표로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나은 전복죽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정 대표는 지금도 매장을 돌며 “많이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두지 말고, 우리 집에서 나가는 음식만큼은 가장 맛있고 신선하게 바로 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뜨거운 불 앞에서 눌어붙지 않도록 오랫동안 저어야 하는 죽은 화려한 음식은 아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자신에게 죽을 쒀주던 마음, 자신이 두 아들에게 따뜻한 죽을 끓여주던 기억이 기장끝집 한 그릇의 뿌리가 됐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모자의 밀키트 도전
기장끝집에 다시 혹독한 시련이 왔다. 바로 코로나19였다. 본점을 시작으로 직영 매장을 4곳까지 확장하며 승승장구하던 시기에 외지인과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겼다. 매출은 급감했고 점포를 정리해야 했다. 바닷가에 자리한 입지 탓에 배달 가능 지역이 좁아 도시락 사업도 여의치 않았다. 정 대표는 활로를 찾기 위해 매장의 방 세 칸 가운데 두 칸을 작업 공간으로 바꾸고 전복죽 밀키트 개발에 뛰어들었다. 매장에서 제품을 만들고 가족과 지인의 손을 빌려 포장하고, 부족한 점은 판매 이후 하나씩 고쳐나갔다.
때마침 군 복무를 마친 작은아들 이현승 실장이 합류하면서 온라인 사업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정 대표가 제품 개발과 맛을 맡았다면 이 실장은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구축부터 상품 등록, 검색광고, 인플루언서 공동구매, 쇼핑라이브와 고객 응대까지 온라인 판매 전반을 책임졌다. 외주를 맡길 여력이 없어 직접 공부하고 실행한 선택이 결과적으로 기장끝집만의 온라인판매 역량이 됐다. 서울 강남의 한 맘카페에서 기장끝집 밀키트가 입소문을 타면서 주문이 폭발했고, 부산 여행 중 본점을 방문했던 고객들의 기억이 온라인 구매로 연결됐다.
이 실장은 “서울에서 외식업 관련 교육을 받고 내려오는 기차 안에서도 노트북을 펼쳤다. 배운 내용을 빨리 사업에 적용하고 싶어 마음이 급했다. 돌아보면 코로나19로 인해 나와 기장끝집이 가장 크게 성장한 시기였다”고 말했다. 주문이 몰릴 때는 새벽까지 송장을 출력하고 가족과 지인까지 합세해 제품을 포장했다. 그 과정에서 전복 내장과 쌀, 육수의 배합을 표준화하고 일부 재료를 분말 형태로 보완하면서 밀키트뿐 아니라 매장의 맛도 한층 균일해졌다. 현재 약661㎡ 규모의 CK에서는 전복죽과 미역국 밀키트를 생산하는 한편, 쌀 볶기와 전복 손질, 반찬 제조 등 매장에 필요한 1차 가공을 담당하고 있다. 월평균 생산·판매량은 전복죽과 미역국을 합쳐 약 7~8만개 수준으로 성장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시작한 밀키트가 사업다각화는 물론 오프라인 매장의 품질과 효율까지 끌어올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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